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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이란게 가능할까

생화학. 나. 본문

Etc.

생화학. 나.

카디' 2019. 7. 26. 01:54

대학 4년 동안 생물을 배우면서

연구에 관해 딱 하나 다짐했던 것이 있다.

 

"절대 생화학 분야 연구는 안 해야지."

 

그렇게 된 이유라 하면....

생물 전공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과목인 생화학을 듣고 나서 그렇게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그림1. 해당과정(glycolysis)의 전체 프로세스 (https://en.wikipedia.org/wiki/Glycolysis)

시험기간에 생화학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늦은 밤 졸린 눈을 붙들어가며

모든 중간 대사체들과 효소들을 외워야 하는 것이 이해가 안 갔을 것이라 생각한다.

과연 이런 과목을 공부하며

누가 기꺼이 이런걸 공부하고 자신의 미래를 이 분야에 맡기고 싶어 했을까

 

'설마 이것도 알아야 해?' 하고 넘어갔던 게 시험에 나왔을 때...

그때의 어리벙벙한 그 기분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렇고

생화학이라고 하면 치를 떨던 때가 있었다.

과연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암 정복'이라는 패기를 가진 대학생이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렇게 패기 좋던 학생은 졸업 걱정에 점점 쭈구리가 되어가지만.. 뭐.. 아무튼..)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생화학과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며 어찌어찌 석사를 마치고 박사에 진학한 이후였다.

 

그래도 몇 년 안 되는 짧은 대학원 생활에도 확실히 느끼는 점 중에 하나는

내가 직접 연구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하는 연구 발표를 듣는 게 훨씬 재밌다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있어서 그런가..

 

그래서 그런지 학회 참석을 하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 편인데,

(교수님 그러니까 학회 좀 많이 보내주세요..)

그중 연대에서 진행됐던 암물질대사 학회가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억에 남는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Christian Metallo 교수님의 강좌였다.

내가 논문을 보거나 강의를 들으면서 특정 이름을 기억하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그렇지만 암물질대사 분야 논문을 찾아보면 자주 나왔던 이름이라

정말 연예인을 보는듯한 느낌을 가지고 강의를 들었다.

 

그림2. 우리 학교 주변 교통량 정보. (7월 25일 밤 10시 23분 기준). 출퇴근 시간에 항상 막히는 길. 과연 어느 곳을 막아야 전체 교통 흐름이 마비가 될까?

 

그 교수님은 물질대사를 도시와 교통량에 비유했다.

정말 찰떡같고, 오지고 지리는 비유가 아닐까?

그 자리에서 머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림3. 오지구요 지리구요. 딱 학회에서 강의를 들으며 내 생각이 이랬다.

 

만약 차가 굉장히 막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을 더 틀어막으면?

나였으면 아마 복창 터져 그 자리에서 죽었다.

 

우리가 답답함을 느끼는 것처럼, 암세포도 그러할 것이다.

암세포도 보급이 안되면 분열이 늦춰질 것이고, 항암제와 같은 외부 공격에 더 약해질 것이다.

 

하지만 특정 암 조직이 가지는 결정적인 프로세스를 막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진행이 되는 것이면 암이라는 이름도 붙지 않았을 것이다.

암의 이질성(heterogeneity)에서 오는 적응력이라는 것은 가히 어마어마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존의 암치료 기법을 통한 물질대사 변화를 추적하고

이를 통해 바뀐 물질대사를 조절하는 기작을 도입한다면?... 

그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새로운 치료 대안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더더더 많지만 나중을 위해 이만 줄이도록 한다.

이제 생화학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돼버렸다.

정말 어렵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분야로 바뀌었다.

이제 시그마 알드리치 회사에서 제공하는 물질대사표는 내 절친한 친구 중에 하나다

 

앞으로는 암물질대사가 어떻게 일반세포와 다른지,

현재 암물질대사에 있어 어느 부분이 각광받고 있는지를 다루고 싶다.

아마 이후에 설명하는 것을 본다면

생화학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은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ps.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생화학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게 가르칠 수 있을까?'

정말 어려운 과제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그렇지만 어느덧 자연스럽게 나한테 스며든 암물질대사 내용을 생각한다면

학생들이 과연 생화학이 응용되는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우리는 생화학이라고 뭉뚱그려서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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